2012년 1월 17일 화요일

스칸듐

과학은 합리적 방법과 확고한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체계화된 지식을 추구한다. 체계화된 과학 지식을 우리는 법칙 또는 원리라 부르는데, 이는 우리가 관찰했거나 추론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해석함은 물론,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을 예측하게 한다. 과학 지식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예측 기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1869년에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 1834~1907)가 원소의 주기율을 발견한 것이 화학을 예측 가능한 진정한 과학으로 발전시키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멘델레예프 이전에도 몇몇 사람들이 원소들의 주기율을 발견하였으나, 멘델레예프만이 이미 보고된 몇 가지 원소들의 원자량이 잘못되었고 이것이 얼마로 고쳐져야 함을 예측하였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몇 가지 원소들의 존재와 이들의 특성을 예언하였다. 그가 예언했던 에카붕소(ekaboron)가스칸듐인데,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후 10년 만에 실제로 발견되었다. 스칸듐이 어떤 원소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원자번호 21번, 스칸듐
스칸듐(scandium)은 원자번호 21번의 원소로, 원소기호는 Sc이다. 주기율표에서는 3족(3B족)에 속하는 은백색의 전이금속이며, 희토류 원소의 하나다. 비활성 기체인 아르곤에 비해 3개의 전자를 더 갖고 있어, 쉽게 3개의 전자를 잃고 +3의 산화 상태를 갖는 화합물을 만든다. 스칸듐은 멘델레예프가 1869년에 주기율을 발표할 때 예언하였던 에카붕소로, 1879년에 스웨덴의 닐손(Lars F. Nielson, 1840~1899)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자번호 21번, 스칸듐. 스칸듐 할로겐 화합물은 태양 빛과 유사한 강한 빛을 내는 램프 등에 사용된다. <출처: (CC)wildmen03 at Wikipedia.org>
스칸듐의 원소 정보.


스칸듐은 아주 희귀하지는 않으나, 특정 광물에 집중적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800종 이상의 광물에 산재되어 있다. 지각에서 약 25ppm(0.0025%) 농도로 존재하는데, 이는 코발트(Co)의 존재량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희토류 광석과 우라늄 및 텅스텐 광석에 소량 들어있는데, 스칸듐이 많이 포함된 광석은 토르트바이타이트(thortveitite: (Sc,Y)2Si2O7, 약 30~40%의 Sc2O3 포함)와 콜벡카이트(kolbeckite: ScPO4∙2H2O)로 이들은 노르웨이의 특정 지역에 주로 매장되어 있다. 스칸듐은 그 자체만을 광석에서 직접 얻기 보다는 우라늄과 텅스텐 생산의 부산물로 얻으며, 연간 생산량은 Sc2O3로 따져서 약 2톤에 불과하다.

스칸듐은 생산량도 적고 또 금속 상태로 얻기도 어려워 값이 비싸 다량 사용되지는 않으나, 산업적 이용은 점차 늘고 있다. 알루미늄 등과 합금을 만들어 항공기 부품, 경주용 자전거 뼈대 등 경주용 운동 기구에 사용되며, 스칸듐 할로겐 화합물은 태양 빛과 비슷한 밝은 빛을 내는 램프에 사용된다. 스칸듐 화합물은 알루미늄과 이트륨 화합물의 중간 정도의 성질을 보이며, 스칸듐과 마그네슘은 성질이 비슷한 대각선 관계(diagonal relationship)를 보인다.

고순도의 스칸듐 결정(아래)과 재융합된 스칸듐 입방체(위). <출처: (CC)Alchemist-hp at Wikipedia.org>


역사와 분리∙발견

1869년 3월 18일에 러시아의 멘델레예프는 화학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를 하였다. 그는 당시까지 알려진 63개 원소의 원자량과 성질을 종합∙분석하여 원소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가를 보이는 주기율, 즉 주기율표를 제시하였다. 이때 그는 2개의 원소(베릴륨과 칼슘)에 대해서는 기존에 확립된 원자량을 새롭게 바꾸었으며 (다른 여러 개의 원소에 대해서는 확립된 원자량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당시에 아직 발견되지도 않은 원소들에 대해 빈칸으로 남겨두었는데 4개의 미지 원소들에 대해서는 각각의 원자량과 몇 가지 성질을 예언하였다. 2년 후에 그는 보완된 주기율표를 발표하였는데, 이 때는 무려 17가지 원소에 대해 기존의 확립된 원자량을 변경하였으며, 처음에 예언했던 4개의 원소 외에 10 개의 원소들을 추가로 예언했고, 우라늄보다 원자량이 큰 초우라늄 원소 5개를 예언하였다. 화학자들은 ‘과연 아직 발견되지도 않은 원소들을 예측할 수 있을까?’라고 반신반의하는 한편, 그의 예언에 매료되었다. 이후 멘델레예프가 변경한 원자량이 모두 타당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가 예언한 원소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화학은 비로소 예측 가능한 학문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멘델레예프가 예언한 원소 중의 하나가 원자량이 45이고 성질은 붕소(B)와 비슷할 거라고 예측했던 에카붕소이다.

원소의 주기율을 제안하고, 스칸듐(에카붕소)를의 존재와 성질을 예언한 멘델레예프. 그에 의해 화학은 예측 가능한 과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에카붕소는 1879년 스웨덴에서 광물 분석에 종사했던 닐손에 의해 처음 발견된다.


이 에카붕소는 1879년에 스웨덴에서 광물 분석에 종사했던 닐손에 의해 처음 발견∙확인되었다. 광산업과 광물질의 연구∙분석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던 스웨덴의 과학자들은 1735년에 코발트(Co)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19가지의 새로운 금속 원소를 처음 발견하였다. 닐손은 1879년에 에르븀(Er; erbium)이 처음 분리∙발견되었던 가돌리나이트(gadolinite)에서 얻은 산화물 중에서 이터븀(이테르븀; Yb; ytterbium)과 비슷한 성질을 보이는 원소를 발견하고는 스펙트럼을 통해 이것이 새로운 원소임을 확인하였다. 그는 육세나이트(euxenite) 광석에서도 이 원소를 발견하였는데, 이 새로운 원소의 이름을 자신의 조국이 속한 지역이면서 또한 해당 광물이 있는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에서 따서 스칸듐(scandium)으로 제안하였다.

닐손이 처음에는 스칸듐 산화물의 화학식을 ScO로 간주하고, 원자량이 90 이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멘델레예프의 에카붕소에 대한 예언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동료인 클레베(Per Teodor Cleve, 1840~1905)가 산화스칸듐을 분석하여 이 원소가 에카붕소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멘델레예프에게 알렸다: 클레베는 같은 해에 원자번호 67인 홀뮴(Ho; Holmium)과 69인 툴륨(Tm; thulium)을 발견하였다. 닐손은 이듬해 논문에서 산화물의 화학식을 Sc2O3로, 그리고 원자량을 멘델레예프가 예측했던 45와 아주 가까운 44로 바로 잡았다.

닐손이 얻은 것은 순수한 금속 스칸듐이 아니고 스칸듐의 산화물이다. 금속 스칸듐은 1937년에 ScCl3, KCl, LiCl의 공융 혼합물(함께 녹는 혼합물, eutectic mixture)을 700~800oC에서 전기분해시켜 처음으로 얻었으며, 제법 많은 양의 순수한 금속 스칸듐의 생산은 1960년에야 이루어졌다. 스칸듐의 실용적 응용은 1970년에야 시작되어 항공기 부품, 운동 기구, 밝은 자연광을 내는 램프, 레이저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용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리적 성질
스칸듐은 21개의 전자를 갖고 있어 전자배치는 [Ar]3d14s2이다. 따라서 3개의 전자를 쉽게 잃어 아르곤과 같은 전자배치를 하게 되므로, 주된 산화수는 +3이다. 비교적 무르고 가벼운 금속(밀도, 2.986 g/cm3)으로 은백색을 띤다. 녹는점은 희토류 금속 중에서 Lu와 Tm 다음으로 높은 1541oC이고, 끓는점은 2836oC이다. 전기비저항은 알루미늄에 비해 월등히 크다. 폴링의 전기음성도는 1.36이다.45Sc는 7/2의 핵 스핀을 갖고 있어, 이의 용액이나 고체 상태의 연구에 핵자기공명법(nmr)을 사용할 수 있다.

천연 상태에서 스칸듐은 단지 하나의 동위원소 45Sc를 가지며, 이는 방사성 붕괴를 하지 않는다. 13 가지의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만들어져 성질이 조사되었는데, 반감기가 가장 긴 것은 46Sc(반감기 83.8 일)이고, 47Sc과 48Sc의 반감기는 각각 3.35일과 43.7시간이다. Sc 방사성 동위원소 중 원자량이 45보다 작은 것들은 전자 포획으로 같은 원자 질량을 갖는 칼슘(Ca) 동위원소가 되고, 원자량이 45보다 큰 것들은 β-붕괴를 하고 타이타늄(Ti)이 된다.

스칸듐의 전자배치. <출처: (CC)Pumbaa at Wikipedia.org>


화학적 성질

스칸듐의 화학적 성질은 다른 희토류 금속과 비슷하며, 화학적으로 비교적 안정하다. 공기 중의 산소와 잘 반응하지 않으나, 가열하면 산화되어 Sc2O3가 되고 물과 반응하여 수소 기체를 내어놓는다. 대부분의 묽은 산에 녹으나, 질산(HNO3)과 플루오르화수소산(HF)의 1:1 혼합물에는 녹지 않는데 이는 부동막이 생기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강산에 녹이면 물에 잘 녹는 염들이 얻어지나, HF, 인산(H3PO4), 옥살산(H2C2O4)과 같은 약산에 녹이면 물에 잘 녹지 않는 염들이 만들어진다. 할로겐 원소들과는 실온에서도 반응하고, 가열하면 대부분의 다른 비금속 원소들과도 반응한다. Sc3+ 이온은 무색이고, 이의 수용액은 가수분해로 인해 산성을 띤다.


스칸듐의 생산과 이용

스칸듐은 주로 우라늄, 텅스텐, 희토류 금속 생산의 부산물로 산화물 형태로 얻어진다. 금속 스칸듐은 산화스칸듐(Sc2O3)을 이플루오르화암모늄(ammonium bifluoride 혹은 ammonium hydrogen fluoride; NH4HF2)과 반응시켜 얻은 플루오르화스칸듐(ScF3)을 고온에서 칼슘(Ca)이나 아연(Zn) 등의 금속으로 환원시켜 얻는다.

Sc2O3 + 6NH4HF2  2ScF3 + 6NH4+ 3H2O
2ScF3 + 3Ca  2Sc + 3CaF2

연간 전세계 스칸듐 생산량은 Sc2O3로 따져서 2톤 수준인데, 소비량은 약 5톤이다. 부족된 양은 냉전 시대에 구소련(주로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용으로 비축했던 물량에서 나온 것이다. 연간 금속 스칸듐 생산량은 10kg 수준이다. 2003년에 세계적으로 단지 3곳의 광산에서 스칸듐이 생산되었는데, 우크라이나, 중국, 러시아에 각각 한 곳씩 있다. 2006년의 Sc2O3(99.0% 순도) 가격은 kg당 미화 700$이었고, 2005년의 금속 스칸듐 가격은 1g당 미화 70$로, 당시 금 값의 약 5배나 된다.

스칸듐과 이의 화합물의 응용은 1970년에야 시작되었으며,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비싸 사용 범위는 제한되어 있으나, 점차 응용 분야가 늘고 있다. 스칸듐은 알루미늄(밀도, 2.7 g/cm3; 녹는점 660oC) 정도로 가볍고, 부식이 잘 되지 않으며 녹는점이 높은 경량 금속 재료이다. 알루미늄에 스칸듐을 첨가하면 결정들이 곱고 균일하게 섞일 수 있게 되어 강도, 탄성, 용접성이 크게 향상된다. 스칸듐-알루미늄 합금은 항공우주 부품에 사용되는데, 특히 미그(MIG)-21과 미그-29와 같은 러시아 군용기에 사용되었다. 또한 야구 배트, 경주용 자전거 뼈대와 부품, 골프채 등의 운동 기구와 총기류에도 사용되며, 최근에는 휴대폰 케이스에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스칸듐이 첨가된 산화지르코늄(ZrO2)은 고체 산화물 연료 전지에서 고효율 전해질로 사용되며, 방사성 동위원소 46Sc는 정유공장에서 원유 분해 추적자로 사용된다.

스칸듐은 아주 밝은(고휘도) 금속 할로겐 램프에 사용된다. 아이오드화스칸듐(ScI3)을 수은 증기 램프에 첨가하면 강하면서 태양 빛과 유사한 빛을 내는 램프가 얻어지는데, 이 램프는 TV-촬영 등에서 천연색을 재생하기 위해 사용된다. 산화스칸듐(Sc2O3)은 레이저 결정과 고출력 자외선 레이저의 표면 코팅 등에 이용된다.

스칸듐-알루미늄 합금은 미그-29와 같은 러시아 군용기 제작에 사용된다.
경주용 자전거의 뼈대와 부품 제작에는 스칸듐-알루미늄 합금이 사용된다. <출처: gettyimages>


스칸듐 화합물

스칸듐의 대표적 화합물은 산화물(Sc2O3), 수산화물(Sc(OH)3), 할로겐화물(ScX3)이다. Sc2O3는 금속 Sc를 태우거나 옥살산스칸듐(Sc2(C2O4)3)을 열 분해시켜 만들 수 있다. 녹는점이 높은(2,485oC) 흰색 고체로, 고온재료, 전자 세라믹과 유리 성분으로 사용된다. Sc(OH)3는 Sc3+ 이온 용액에 알칼리를 가하면 얻어진다. Sc(OH)3는 광학 부품의 코팅, 전자 세라믹, 레이저 산업 등에 사용된다. Sc2O3와 Sc(OH)3는 알루미늄 산화물(Al2O3)과 수산화물(Al(OH)3)처럼 산과 알칼리로 모두 작용하는 양쪽성 물질이다.

산으로 작용: Sc2O3 + 6 OH- + 3H2 2 Sc(OH)63-
염기로 작용: Sc2O3 + 6 H+ + 9H2 2 Sc(H2O)63+

Sc2O3를 할로겐산(HX) 또는 NH4HX2 (NH4X+HX)와 반응시키면 할로겐 화합물이 얻어진다.

Sc2O3 + 6 HX  2ScX3 + 3H2O

ScF3를 제외한 ScX3는 물에 아주 잘 녹는다. ScF3는 물에 녹지 않으나, 과량의 F-이 있으면 물에 녹게 되는데, 이때 ScF3는 루이스 산으로, F-는 루이스 염기로 작용한다. 다른 ScX3들도 루이스 산이다.

ScF3 + 3F-  [ScF6]3-

스칸듐의 삼플루오르화메테인슬폰산염(scandium triflate, Sc(CF3SO3)3)은 Sc2O3를 삼플루오르화메테인슬폰산(triflic acid: CF3SO3H)과 반응시켜 얻는데, 유기화학에서 루이스 산 촉매로 비교적 많이 사용되는 화합물이며 물에서 안정하여 작은 양으로도 충분한 촉매 작용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화합물에서 Sc의 산화 수는 +3이다. 그러나 낮은 산화 수를 갖는 화합물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Sc의 산화수가 +2인 CsScCl3이며, 이와 유사한 MScX3(M은 알칼리 금속; X는 할로겐) 형의 여러 화합물들이 만들어졌다. 또한 ScCl3와 Sc의 반응에서 Sc7Cl12, Sc5Cl8, Sc2Cl3, Sc7Cl10 등이 얻어졌는데, 이들은 모두 산소와 습기에 민감하다.
 


  1. 수치로 보는 스칸듐
    스칸듐의 표준원자량은 44.956g/mol이다. 원자의 바닥 상태 전자배치는 1s22s22p63s23p63d14s2 ([Ar]3d14s2)이며, 화합물에서 주된 산화 수는 +3이다. 지각에서의 존재 비는 약 25ppm(0.0025%)이며, 주로 우라늄과 텅스텐 생산의 부산물로 얻는다. 1기압에서 녹는점은 1,541oC이고 끓는점은 2,836oC이다. 20oC에서 밀도는 2.985g/cm3로, 알루미늄보다 약간 크다. 20oC에서 전기비저항은 500~600nΩ∙m이며, 열 전도율은 15.8W∙m-1∙K-1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온화 에너지는 각각 633.1, 1235.0, 2388.6kJ/mol 이며, 폴링의 전기음성도는 1.36이다. 원자 반경은 162pm이고, Sc3+ 이온의 반경은 75pm이다. 천연 동위원소는 45Sc 한 가지뿐이다.
  2. 희토류 원소(Rare earth element)
    란탄족 원소(원자번호 57번의 란타넘(La)에서 71번의 루테튬(Lu)까지의 15개 원소)에 스칸듐(21Sc)과 이트륨(39Y)을 합친 17개의 원소들을 말한다. 이름과는 달리, 지각에서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으나, 여러 광물에 산재되어 있어 분리해 내기가 어렵다.
  3. 대각선 관계(diagonal relationship)
    주기율표의 2주기와 3주기에서 대각선으로 이웃하는 원소 쌍은 비슷한 성질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Li과 Mg, Be와 Al, B와 Si, 그리고 N과 S가 대각선 관계를 보이는 원소 쌍들이다.
  4. 공융 혼합물(함께 녹는 혼합물)
    고체 혼합물이 순수한 단일 성분 고체처럼 한 온도(함께 녹는 점, 공융점)에서 모두 녹는 혼합물이며, 가능한 한 가장 낮은 온도에서 녹는 조성을 갖는 혼합물이다.
  5. 루이스 산
    화학결합에서 자기 자신은 전자를 제공하지 않고 다른 분자나 이온이 제공하는 전자쌍을 공유하여 안정한 복합체를 만드는 분자나 이온을 말하며, 이때 전자쌍을 제공하는 화학종은 루이스 염기라 한다, H+, Co3+나 Fe3+ 등의 금속이온, BF3, AlCl3 등이 대표적인 루이스 산이다.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늘날 컴퓨터는 우리의 생활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컴퓨터가 없는 현대사회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 컴퓨터의 제어 관리기능 등 현대 컴퓨터의 사용범위는 무궁무진 하다. 하지만 컴퓨터가 가진 본래의 역할은 그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계산’ 기능이다.

도대체 이 현대 계산이론은 누가 처음으로 도입했을까? 단지 한 두 사람이 이뤄낸 성과는 아니겠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영국의 수리논리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에게 그 공을 돌린다.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 보면, 튜링은 미국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의 업적과 생각을 실제 컴퓨터 설계에 확장 구현한 것이라는 학문적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괴델과 튜링은 타임지가 선정한 지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 100명에 든 단 2명의 수학자들이다.

두 사람은 모두 수학의 분야 중 수리논리학(수학과 논리학의 하위분야. 전산학 및 철학논리와 밀접하게 연관)에서 업적을 이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튜링이 괴델의 생각을 발전시켜 현대 컴퓨터 이론의 기초를 세웠다는 면에서, 우리는 괴델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잠재돼 있던 괴델의 학창시절

쿠르트 괴델. <출처: wikipedia.org>

괴델의 업적이나 학문적 영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비교되곤 한다. 사실 두 사람은 그들이 머물렀던 미국 고등과학연구소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이었다. 1930년대 후반의 혼란스런 정치상황에서 괴델은 오스트리아를 떠나 고등과학연구소로 영구 이주한다. 하지만 괴델은 아인슈타인에 비해 대중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 컴퓨터가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 인지과학의 태동 등을 볼 때 괴델의 업적이 오늘날 더욱 그 진가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언뜻 그의 은둔자적 삶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1906년 4월 오스트리아 브르노(현 체코령)에서 태어난 괴델은 직물업계에 성공한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을 넉넉하게 보낸 편이었다. 뭐든 질문을 잘해서 ‘왜요’ 도령(der Herr Warum: Mr. Why)으로 불린 그는 모든 과목에서 최고성적을 내는 우수하고 영민한 학생이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그는 일생 동안 스스로 읽은 의학지식을 더 신뢰하며 지나친 건강 염려증을 갖고 살았다. 이는 말년에 음식섭취를 거부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24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대학에 입학해, 그 곳에서 십여 년간 학자로 성장하며 그의 생애 최대 업적들을 이루게 된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시작으로 철학, 수학을 공부했는데, 지도교수 한(Hans Hahn)을 만난 이후, 그의 관심은 수리논리학에 집중된다.

한과 철학자 카르납 등이 주도한 비엔나 서클은 논리실증주의(과학의 논리적 분석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고자 하는 사상)로 유명했는데, 괴델을 정식으로 초청했다. 괴델은 서클의 주된 의견들에 동의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서클이 학생이었던 그가 학문대상을 설정하는 데 지적 자극제 및 안내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수리논리학의 탄생과 발달
여기서 당시 수리논리학의 탄생과 발달을 잠시 살펴보자. 수리논리학은 수학의 기초를 건설하는 집합론, 기호논리학 등을 포괄하는 학문이란 의미에서 수학기초론으로도 불린다. 18, 19세기에 거듭된 수학의 성과는 엄밀성이 미처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얻어졌다. 예를 들어 수열의 수렴성, 함수 연속성과 미분 가능성 등의 엄밀한 정의가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많은 결과들이 발견됐고, 때로는 모순되거나 잘못된 결과가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런 난점들을 타개하고 수학의 기초를 건설하는 도구로 집합론이 거론됐다.

이 이론은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가 19세기 말 우연한 계기를 통해 확립한 것으로, 초기 일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점차 받아들여진다.

칸토어는 집합론의 논법으로, 당시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터부시 돼왔던 무한 개념을 엄밀히 다룰 수 있었다. 특히 무한집합 사이의 ‘크기’(또는 기수, cardinality)를 일대일 대응으로 논하는데, 이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자연수 집합은 유리수 집합의 부분집합임에도 서로 간에 일대일 대응이 존재함을 보여, 크기가 같다는 결론을 얻는다.

하지만 실수 집합과 유리수 집합 간엔 일대일 대응이 존재하지 않음도 보여, 실수 집합의 크기가 유리수 집합보다 크다는 결론을 얻는다. 칸토어는 더 나아가, ‘유리수 집합보다는 크지만 실수 집합보다는 작은 무한집합이 존재하느냐’ 질문했고, 그런 무한집합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것이 유명한 그의 ‘연속체 가설’이다. 그는 남은 일생동안 이 문제에 매달리는데,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정신병동에서 쓸쓸히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문제는 잘 알려진 대로 후대에 괴델과 코헨에 의해 풀린다.

집합론을 확립한 게오르크 칸토어.
<출처 : wikipedia.org>


집합론의 문제점 발견, 새로운 학문 요구
한편 20세기에 접어들어 수학자들은 집합론을 통해 수학의 기초를 건설하며, 모순 없고 엄밀한 수학을 재구성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러셀(Bertrand Russell)의 역리’라 불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견되며 흔들리게 된다. 칸토어의 집합론은 특정성질을 공통으로 갖는 원소들의 집합은 항상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원소들을 모은 집합 S가 존재한다. 집합기호를 쓰면 아래와 같다.

‘러셀의 역리’를 발표한 버트런드 러셀.
<출처 : wikipedia.org>

즉, S는 '원소 x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다'는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들의 집합니다. 우선 여기서 S가 S의 원소라 가정해 보자. 즉 S∈S라 하자. 그러면 집합 S는 자신 S의 원소가 돼, 성질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다는 집합 S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기호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이번엔, S가 S의 원소가 아니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S는 집합 S의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이므로 S에 들어간다. 즉, 아래의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모순된 결과를 얻는다.


러셀의 역리로 인해, 수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모순이 생기지 않는, 수정되고 좀 더 심대한 집합론 및 수학 기초론의 등장이 요구됐다. 이 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파들이 등장해 각자의 주장을 펼치게 된다. 괴델이 수리논리학을 연구하고자 결심한 1920년대의 상황이 이러했던 것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동원하면, 이 시점이 서구 수리과학역사에 있어서 매우 혼란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는 시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과학의 근간이 되는 수학의 세밀한 전개가 요구되던 즈음, 그 도구로 각광받던 집합론에 근본적 결함이 발견됐다. 이는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과학성과 전체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동시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학문적 인식이 태동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감돌던 시기라 말할 수 있다.

당시 급진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부류도 있었고, 수학을 논리학에 귀속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오늘날 현대 수학의 근간이 되는 정론은 힐베르트(Hilbert)의 형식주의 또는 공리론적방법론이다.

이를 한마디로 설명하긴 매우 힘드나, 불완전하나마 요약해보자. 우선 인간의 언어가 가지는 결함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수학의 명제를 형식적 기호의 나열로 바꾼다. 그런 명제들 중, 모순이 생성되는 요소를 피해 수학의 공리들을 세우고, 거기서 새로운 명제를 유도하는 법칙을 세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일종의 기계적 프로그램으로 수학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힐베르트는 이러한 형식적이고 기계적 체계 하에서 수학의 기본 공리를 세심히 설계하면, 모순이 절대로 유도되지 않는 것을 보일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즉, ‘러셀의 역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수학의 기초가 다져지는 것을 기대한 것이다. 이것을 ‘힐베르트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실제로 체르멜로(Zermelo)는, 요즘 체르멜로-프랭켈 공리라 불리는, 모순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집합론의 공리들을 제안했다.

집합론의 공리를 제안한 힐베르트. <출처: wikipedia.org>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불완전성 정리’ 발표
1931년, 괴델은 20대의 나이에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기적 결과인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한다. 이것이 바로 괴델을 유명하게 만든 이론이다. 이 정리의 증명 속에는 앞서 컴퓨터에서 언급한 계산이론의 토대가 담겨져 있다. 괴델의 정리는 너무나도 신비하게 들려서, 일생을 들이더라도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해야겠다는 갈구가 생길 정도이다. 불완전성 정리를 한마디로 요약하긴 힘드나, 축약해본다면 ‘진리임에도 증명될 수 없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수학적 명제는 증명을 통해 진리임이 밝혀지는데, 증명될 수 없는 명제가 진리인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면 수학적 진리란 무엇이고, 그것을 증명한다는 의미는 정확히 무엇인가? 그의 정리는 제일, 제이 불완전성 정리들로 나눠진다. 제일 불완전성 정리는 대략적으로 서술하면, 수학에서는 증명도 부정도 되지 않는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칸토어의 연속체 가설과 연관된다. 괴델은 연속체 가설이, 제일 불완전성 정리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증명도 부정도 안 되는 명제일 것이라 추측했다. 마침내 그는 1930년대 중반, 연속체 가설이 수학에서 ‘부정되지 않는 명제’임을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그 후 1960년대에 와 비로소 코헨(Paul J. Cohen)이란 젊은 수학자에 의해 연속체 가설이 ‘증명도 되지 않는 명제’임이 밝혀짐으로 연속체 가설 문제의 종지부가 찍힌다. 코헨은 그 업적으로 수학자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Fields)상을 받는다.

제이 불완전성 정리는 더욱 놀랍다. 수학을 전개하는 근본 공리를 선정해 그 체계가 정말 모순이 없다면, 그 모순이 없다는 사실 자체는 (그 체계의 논리전개로는)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힐베르트의 프로그램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리학문계는 다시 한 번 커다란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인다. 괴델의 정리는 힐베르트나 그 이전 수학자들이, ‘우리가 알고자 하는 수학적 문제들은 결국 진리이거나 거짓으로 판명 또는 증명될 것이라’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믿음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인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 하나의 세기적 사건이었다.

제일, 제이 정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리이나 증명되지 않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한다’이다. 제이 정리의 경우, 방금 살핀 것과 같이, ‘수학에 모순이 없다’는 명제 자체는 진리여야 함에도,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일 정리의 경우도, 수학에서 증명도 반증도 되지 않는 명제는, 플라톤적 관점에서 그 자신 또는 자신의 부정명제 둘 중 하나는 참일 수밖에 없으나, 어느 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괴델은 참인 수학적 명제들의 범위가, 인간이 궁극적으로 증명의 방법을 통해 참으로 확인해 인식할 수 있는 명제들의 범위를 넘어선 것을 보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인간이 참으로 인식 또는 증명할 수 있는 명제'들의 범위를 규정하기 위해 `계산 가능하다'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하게 된다. 나중에 튜링과 후대 학자들에 의해 정의가 확장 보강되고, 튜링은 그렇다면 기계적 프로그램으로 `계산 가능하다는 개념'을 실행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실제 컴퓨터를 설계하기에 이른 것이다.


불완전성 정리가 미친 영향
불완전성 정리로 힐베르트의 원래 의도 했던 계획이 무산됐다고 해서 그의 형식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가 처음 제시했던 수학의 형식적 재구성에 관한 철학과 관점은 계속 유효하고 올바른 방향이라 여겨졌고, 현대수학은 그의 형식주의의 발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인간의 근본적 인식의 한계로 인해 힐베르트가 원하던 것을 100% 얻을 순 없다 하더라도, 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옳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완전성 정리는 칸토어 이후 제기돼 왔던 수학 기초론의 기본 논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한계 속에서도 계속 작업을 해야 함을 알려 준 것이다. 따라서 이후,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수학기초론의 근본적 인식에 동의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출렁이던 초기 수리논리학 역사가 안정되고 급속한 후속 진보를 이루는 토대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분석철학, 인식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언어학, 현대의 인지과학에 까지 파급력을 끼치고 있다. 논리학 내에서는 정리의 확장이, 양상논리라는 형태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다. 정리의 증명에 사용된 코딩이론, 계산가능성론 등은 후대 튜링, 폰 노이만(von Neumann) 등에 의해 발전돼, 세계 최초의 현대적 컴퓨터 설계를 위한 이론 배경이 된다.

2006년에는 괴델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에서 기념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참가했으며 괴델의 우주론, 이론 컴퓨터 학에 미친 괴델의 공헌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괴델의 업적이 신학, 철학 등의 인문학과 인지과학에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가 다음날 계속 됐다. 그의 주 연구 분야였던 집합론, 수리논리학에서 현대에도 계속되는 영향과 결과들의 발전에 대한 발표가 뒤를 이었다. 지난 세기 학자들 중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자취를 남긴 사람이 있었던가? 그와 그의 업적에 대한 향연은 끝난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가고 있다.
 

2011년 12월 8일 목요일

vi 에서 ^M 지우기.

파일을 FTP 로 올리고 리눅스 vi 로 확인하면 문장 각 끝에 ^M 기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개행문자(줄바꿈문자) 가 깨진 것이다.

별로 실행되는데는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보기 싫으니 지워 버리자.

esc 키를 눌러 명령어 모드로 한후


:%s/^M$//g

마지막 까지 지워진걸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서 ^M  문자 입력시 ctrl + V , ctrl+M 키를 눌러야 한다.

찾아보니 윈도우 vi 에서는 ctrl + V가 붙여넣기 단축기라 동작 하지 않는다고 한다. 윈도우 에서는 ctrl+ Q

까먹지 말자.